서울 약령시

서울약령시
조선 17대 왕인 효종(재위 1650년 ~ 1659년) 2년에 시작되어 일제 말엽인 1943년까지 약 300년간 한약재 교육을 담당했던 특수시장 ‘약령시’는 약재료가 주로 많이 생산되는 경상도, 강원도, 전라도에서 모이고 헤어지는 일이 편리한 대구, 원주, 전주의 3개소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약령시’가 개설된 이유는 각 산지에서 나오는 약재들이 각각 다르므로 인삼을 구하려면 금산으로 가야 하고, 반하를 구하려면 제주도로 가야만 했기 때문에 급한 상황일 때 바로 약을 처방하지 못해 응급환자가 목숨을 잃기도 하여 나라에서 의도적으로 ‘약령시’를 형성시켰던 것입니다. 그중 서울약령시는 조선시대 여행자들에 대한 무료 숙박과 의지할 곳 없는 병자에 대한 치료를 담당하던 구휼기관인 보제원이 있던 곳으로 서울시로부터 1995년 6월 ‘서울약령시’로 지정 승인받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전국적인 한약재의 집산지인 서울약령시는 유통의 편리함 때문에 1960년대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하여 동대문구 제기동, 용두동 일대 약 8만여평의 부지에 한의원, 한약국, 한약방, 한약재료상, 탕제원, 제분소, 한약 관련 기계 및 재료 등 한의약 관련산업의 성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 한약재 유통의 70%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약령시는 강북농수산물검사소를 통해 양질의 한약재가 유통될 수 있도록 한약재 품질검사 강화 및 자율정화활동, 품질안전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각 대학 한약관련 학과와의 산・학・관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한방의 계승・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전통과 신뢰를 바탕으로 세계 최대 한방시장으로 도약하고 있습니다.

서울약령시는 2005년 7월 재정경제부로부터 ‘서울약령시 한방산업특구’로 지정되어 한방특화 산업을 통한 관광 인프라 구축으로 지역발전과 경제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고자 하였으며, 2006년 9월 서울약령시 상인들이 한의약 관련 유물을 하나, 둘 기탁하여 건립한 ‘서울약령시 한의약박물관’을 개관하였고, 환경개선사업을 시행하였습니다. 2013년 7월 서울시로부터 ‘한방특정개발 진흥지구’로 선정되었습니다.

미래유산은 문화유산으로 지정 혹은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대화 문화유산 중에서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모든 것으로 서울 사람들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온 공통의 기억 또는 감성으로 미래 세대에게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을 말합니다. 서울약령시는 2013년 11월 ‘서울미래유산’으로 등재되어 서울시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옛 보제원 터
보제원(普濟院)은 천년을 이어온 공공의료의 전통으로 그 역사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흥인문(동대문) 밖 3리, 교통 요지에 위치한 이곳은 의료 구휼 사원 '자복사(資福寺)'나 개경과 남경을 잇는 '남경역(南京驛)'에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조선 태종대 통폐합 후 세종대에 '보제원'으로 개편되어 백성들에게 의술을 베풀고, 의료뿐 아니라 기로연과 상언 접수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했다. 현재 서울약령시는 보제원 옛터로,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